단순히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했다. 심리적인 요인이 아닌 내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가 내게는 더 크고 중요한 동기부여였다. 운동을 하면 할수록 근육이 커지는 것처럼 뇌에도 근육이 쌓인다는 말은 나의 몸을 움직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.
명상을 하면 충동, 이성적 판단을 통제하는 전두엽이 발달하기 때문에
어떤 외부 요인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게 된다.
전두엽의 근육을 키워놓는다면 외부의 어떤 침략자도 덤덤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. 하지만 명상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. 여기저기 만연한 방법으로는 명상으로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고 생각들은 끊임없이 나를 방해했다. 그 생각들도 지나가게 두라고 하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. 그렇게 꾸역꾸역 명상을 이어가던 어느 날, 한 다큐멘터리에서 기도하는 사람의 뇌를 찍어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보았다. 활성화되었던 부분은 전두엽이었다. 전문가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 명상을 할 때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이 기도를 할 때 이 부분이 더 크게 활성화된다고 전했다. 생각해 본 적 없었다. 기도와 명상의 근원이 같다는 것을 말이다. 지인이 기도를 하면서 답을 얻었다고 했을 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. 하지만 그것은 진짜였을지도 모른다. 기도를 통해 기억력과 사고력이 활성화되면서 뇌 속에 잠들어 있던 답이 '나 여기 있어요'하고 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.
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를 하고
그 후에 편안한 얼굴이 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. 과학이었다.
이렇게 본다면 많은 사람들이 힘들 때 종교를 찾고 더 크게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도 일리가 있었다. 하지만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. 갑자기 이러한 이유로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의도가 불순하기도 하고 또 진심이 아니기에 효과도 없을 터였다. 그렇다면 정말 방법이 없는 것일까. 나는 안타까움 속에서도 명상을 이어갔다.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고 꼭 10분은 생각들과 실랑이를 했다.
그러다 문득, 특정한 신은 아니지만 신과 같은 무언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. 내게 그런 경외감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자연이었다.
끝도 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산맥들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지를 확인했던 때,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행성들, 세상이 핑크 빛 노을로 가득했던 어느 겨울, 그때 느꼈던 잔잔한 바람과 따뜻한 냄새.
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아름다운 느낌이었다.
황홀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.
생각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고 어쩔 때는 너무 아름다워서 슬퍼졌다. 왜 좋은데 눈물이 날까. 솔직히 이것이 내가 원하는 느낌이 맞는지는 모르겠다.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명상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고 머릿속이 맑아진다는 것이다. 아마 나는 시작할 때부터 명상의 효험을 본 것인지도 모른다. 자연의 경외감을 전두엽 메모리 속에서 찾아낸 것을 보면 말이다. 명상을 하고 싶은데 명상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정공법이 아닌 약간의 우회하는 방법도 괜찮다고 생각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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